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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일 인내와 믿음의 눈 7월 19일

다함께 찬양을

소그룹 성가

시작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께서 이제 여기에
  • 우리와 함께 하소서.
  • 구원의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과 뜻을 주시어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 아멘.

생활 나눔

(지난 한 주간 있었던 일들 중에서 특별히 감사할 내용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었으면 서로 이야기하며 격려와 위로를 나눕니다.)

오늘의 말씀

마태13:24-30,36-43

24 ¶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26 밀이 자라서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도 드러났다. 27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주인의 대답이 ‘원수가 그랬구나!’ 하였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을 뽑아버릴까요?’ 하고 종들이 다시 묻자 29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30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36 ¶ 그 뒤에 예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와서 “그 밀밭의 가라지 비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37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이 끝나는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묶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끝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41 그 날이 오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내어 42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43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말씀의 샘

지혜로운 농부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추수 때와 같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농부는 추수할 곡식의 상태가 어떤지 가장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방법으로 추수할 곡식 전부를 거두어들일 고민을 합니다. 농부는 밀밭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급한 농부라면 그 가라지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겠지요. 분명 베어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농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농부는 그러한 일이 알곡도 함께 잃는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가라지와 알곡은 섞여서 자칫 알곡을 잃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농부의 지혜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고 식별하는 원리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역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고 있는 곳입니다.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그것이 자라날 때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농부의 시선이라면, 그 판단은 정확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거둘 결실이 어떤 것인지를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선과 악, 불의와 정의, 평화와 분열을 구분하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정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가 무엇이고, 분열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거짓 선이고 무엇이 거짓 정의이며, 무엇이 거짓 평화인지를 식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복음 말씀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깁니다.

식별과 겸손

비유 이야기를 우리의 신앙적 삶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심판자로 자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급함에는 대부분 공동체가 함께 이루는 식별이 배제됩니다. 개인의 정의감으로, 집단의 편견으로 우리는 쉽게 밀밭의 가라지를 솎아내려고 낫을 든 자들이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세상의 심판자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심판자의 메시지를 증언하고 선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비유 이야기에서 종은 자신 있게 가라지를 뽑을 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주인은 그렇게 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은 종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식별은 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식별을 위한 기도와 훈련, 성찰과 자기반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앙을 성찰할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이 가진 한계를 묵상하게 되고, 겸손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깊은 섭리를 바라보는 자가 됩니다. 섭리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당신의 자녀들이 좋은 땅을 통해서 잘 자라나도록 돕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이란 그분의 지혜와 경륜이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자라게 하는지 인내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말씀 나눔과 실천

(제시된 질문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의견과 경험 등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곡과 같은 신앙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어 봅니다.
  • 교회 안에서 개인의 의견이 공동체의 의견과 다를 경우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선한 일인지 이야기 나누어 봅니다.

기도 나눔

(교회 주보에 나온 기도의 내용을 활용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기도하거나 정한 사람이 기도하시면 됩니다.) (또는 아래에 제시된 방법대로 기도하셔도 좋습니다.)

  1. 성서 본문을 다 같이 읽습니다.
  2. 각자 마음에 와 닿은 단어나 짧은 구절을 나눕니다.
  3. 나눔이 끝나면 성서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4. 한 문장으로 기도를 바칩니다.

봉헌과 찬양

(헌금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인도자는 미리 준비된 헌금 바구니나 접시를 이용해서 성가를 부르는 동안에 봉헌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성가를 마친 후에 인도자가 혹은 정한 사람이 봉헌기도를 드립니다. 봉헌기도는 준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자유롭게 기도합니다. 가정기도를 드릴 때에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잠시 침묵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감기도

(봉헌기도가 끝나면 인도자는 전할 광고가 있으면 전하고 성 크리소스톰의 기도와 은혜의 기도로 마칩니다.)

성 크리소스톰의 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유익한 대로 채워 주시며, 이 세상에서 당신의 진리를 깨닫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아멘.

 

은혜의 기도

  • 주님을 찬미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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