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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성유축복 감사성찬례 교구장 메시지 – 서울교구 성직자들에게

성목요일 성유축복 감사성찬례에는 교구의 모든 성직자들이 참여하여 처음 성직 서약을 함께 확인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2020년)에는 코로나 19에 대응한 거리두기 실천으로 전 성직자가 모이지 못하고 각 교무구를 대표하는 총사제들만 참석하여 감사성찬례를 드렸습니다.

이 성찬례에서 이경호 베드로 주교가 성직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평화의 주님 안에서 복된 성삼일, 복된 부활을 맞으시길 빕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제직

2020년 4월 9일

  • 이사61:1-9
  • 루가4:16-22

코로나 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벌써 확진자는 150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9만 명이 넘습니다. 잠시 코로나19로 사망자 분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구합시다.

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금년 사순 절기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몇 차례 상황이 좀 더 나아지길 기대했지만 우리의 기대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며 몹시 당황했습니다. 새로운 사목 서신을 보낼 때마다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힘든 결정을 할 때마다 지혜를 모아 주신 총사제 신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렇게 힘든 시기에 총사제 신부님들께서는 교무구에 속한 성직자와 교회를 세심하게 보살펴 주셨고, 특히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에 여러 교회와 많은 교우들이 정성을 모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요.

우리는 오늘 성유축복식, 성삼일 전례 그리고 부활 밤 전례와 부활대축일도 교우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이 현실이 너무도 마음 아프고 아쉽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유축복식과 성직서품갱신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전례를 통해서 우리는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나 개별 교회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사제요 신자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교구장 주교의 사목 아래 우리 모두가 연합하고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금년에는 코로나 19로 이렇게 총사제 신부님들만 참석하니 우리 신부님들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금년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신부님들에게 구세실 주교님이 쓰신 [사제 생활의 지침]이라는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사순 절기를 통해서 우리 사제들의 신원, 정체성을 다시 성찰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국성공회에서 나온 [성직 직무에 관한 지침서]를 신부님들에게 보내드릴 것입니다. 교무구에 속한 신부님들이 이 두 권의 책을 정독할 수 있도록 총사제 신부님들께서 세심하게 챙겨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두 권의 자료를 근거하여 우리 시대와 우리 교회에 맞는 성직 지침서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성직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삶을 성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방식으로 나의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교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삶을 살겠노라는 다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명 – 성직의 삶은 나 자신의 이기심,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여 자기를 초월하는 일이고, 이렇게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살면서 삶의 보람 기쁨을 누리는 일입니다.

오늘 서품갱신서약은 총사제 신부님들만 하십니다. 하여 오는 5월 27일 서울교구 설립 기념일- 성직 서품식 때 다시 다짐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유를 축성합니다. 성유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성유는 거룩한 성별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성유는 우리의 전례와 사목에서 매우 유익하고 중요합니다. 성유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우리들은 성별과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더욱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임하셨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은 후 주님은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말씀처럼 자유와 해방을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주님은 복음의 진리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이루는 것이 당신의 양식이요, 소명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 – 죽음의 길도 묵묵히 걸어 가셨습니다.

우리들은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로 축성된 우리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닮아 서로를 위해서, 서로 함께 서로를 향해서 일치를 이루며 거룩한 친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성직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성공회의 성직자로 / 하느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부름 받았고, 교회의 사제로 세워졌고, 파송되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양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양육하여 더 건강한 신자로 자라나도록 온 정성을 다해야 할 책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직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그리고 입장을 갖게 마련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나 경험, 사목의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사목은 낡고, 자기의 틀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성숙은 우리들이 섬기는 신자와 교회로 이어집니다. 사제가 변화 되어야 신자도 교회도 변화되어갑니다. 사제의 변화와 영적인 성장은 곧 신자와 섬기는 교회의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성직자들이 복음 안에서 눈이 열리고, 십자가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더 멋지게 성장하면 우리가 돌보는 신자들도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성장해 갑니다.

우리의 모든 전례를 그런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집전하는 모든 전례가 주님가신 그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금 부활의 은총을 누리는 전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전례의 집례자인 사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제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을 축성하고, 나누며 주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축복하고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치며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병든 사람에게 믿음과 소망과 치유의 은혜를 베풀고,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과 부활의 약속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더욱 멋진 성직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고, 지혜와 힘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서울교구의 모든 성직자들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고 협력하여 주님의 교회를 섬긴다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변화되고 성장할 것을 믿습니다. 총사제 신부님들께서 교무구의 사제들을 잘 돌보셔서 우리 모두가 주님가신 그 길을 따르는 성직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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