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세계를 위해 일하는 교회
“야훼 하느님께서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창세 2:15)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교우 여러분!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크신 은총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모든 교우와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길고 힘들었던 코로나 감염증 상황에서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모든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내면서 지역교회와 사회선교 기관을 섬기어 주신 교우들과 성직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코로나 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안식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으로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사랑의 친교를 나눌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교회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더 간절히 갈망하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갈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서울교구는 2023년 표어를 ‘하느님의 세계를 위해 일하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온 인류를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가시화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위해 노력할 때 그 존재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위험과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분쟁 그리고 폭력으로 무고한 생명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와 물질 만능주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탐욕으로 인해 지구의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과 신앙공동체는 해체되고 많은 사람이 외로움과 고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 되어 세대 간, 경제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우리 교회의 사목과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이 시대의 징조를 파악하고 분별하는 영적인 지혜를 구하고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하느님 앞에 머물러 기도하면서 시대의 성소를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 감염증 이전보다 더 굳건한 신앙의 교제와 거룩한 친교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제15차 람베스 회의에서 전 세계 165개 나라에서 온 650명의 주교들은 세계성공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신앙을 함께 공감하고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공회가 지켜온 복음의 정신,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심으로 하는 비아메디아 정신, 전례적인 교회로서의 전통, 거룩한 친교와 상통의 신앙,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 현대 과학과 문화와 대화하는 열린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가 추구한 신앙의 덕목이고 더 발전시켜야 할 가치입니다.
지금은 분명 위기의 때이지만 우리 교회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목과 선교의 비전을 세우고 함께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세계를 위해 일하는 교회가 될 때 우리 교회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가시는 구원의 빛을 밝히는 교회가 될 것이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을 품어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첫째, 복음의 정신에 충실한 제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주님의 제자를 양육하는 영적 훈련소입니다. 여러 기업에서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만든다면 교회는 복음에 충실한 제자를 양육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신앙, 전례, 사랑의 친교가 우리 모두를 제자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성서를 읽고 기도 생활과 성무일과에 충실한 생활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우리 교회는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보전하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기후위기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미래와 지구의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대한성공회의 모든 교회와 활동단체, 신자들이 함께 협력하여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우리 교회는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어린이, 여성, 노인, 차별과 편견 속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전히 교회 곳곳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서울교구는 이러한 모든 일을 위해 교구가 하나의 교회가 되어 지역교회, 사회선교 기관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직자, 평신도와 함께 긴밀히 협력하고 공동의 사목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거룩한 친교와 일치를 이루어 함께 사목하고 선교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올 한 해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모든 교회와 가정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과 기쁨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3년 1월 1일 거룩한 예수 이름 축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이경호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