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설립 130주년 기념일 이경호 주교 설교

2020년 9월 29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대한성공회 설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성찬례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정책에 따라 작지만 정성스럽게 바쳐진 이 기념 예배에서 이경호 베드로 주교가 선포한 설교 전문을 여러분들께 전해 드립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되자

창세28:10-17 / 묵시 12:7-12 / 요한 1:47-51

오늘은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아울러 대한성공회의 설립 130주년을 맞는 날, 1890년 9월 29일 존 코프 주교님이 인천항에 첫발을 디딘 뜻 깊은 날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고요한 주교님은 이 땅을 향해 오실 때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마치 나룻배 한 척으로 전쟁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조선 땅은 매력있는 선교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중국이나 일본을 더 선호했습니다. 조선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선교를 위한 동역자를 구하는 일은 힘들었고, 선교기금을 모으는 일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우리 대한성공회의 시작은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난한 사람들, 고아들을 돌보는 자선사업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사업을 했으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서 병원을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지난 130년 동안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런 역사는 I960, 70년대는 산업선교로, 1980, 90년대는 나눔의 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선교로 이어졌습니다.

어려운 여건과 상황 속에서 우리 교회를 섬겨 오신 모든 선교사, 역대 주교님들과 사제들,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기도하고 봉사로 아름다운 신앙을 이어오신 모든 분들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예배를 봉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이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이 예배를 봉헌합니다.

오늘의 성서본문에는 다양한 모습의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를 오르내 리는 천사들을 봅니다. 요한묵시록은 “하늘의 전쟁에서 천사 미카엘과 부하천사들이 사탄의 세력과 영적인 전투를 치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103편에서 시인은 “주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라”고 노래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 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야곱의 이야기를 새롭게 적용하여 말씀하십니다.

구약성서에서 천사는 언제나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다가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낯선 나그네를 따뜻하게 환대하고 맞이했던 사람들 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선물로 받습니다. 야곱은 외딴 광야에서 홀로 어두운 밤을 맞이했습니다. 홀로 어두운 밤을 맞이하는 일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신비한 꿈을 꿈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지켜 주실 것이며,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신다고 놀라운 약속의 말씀도 듣습니다. 야곱은 외롭고 낯선 땅에서, 두렵고 무서운 밤에, 절박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선조들의 삶을 이끌어 오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꿈에서 한 줄기의 빛, 희망을 본 것이지요.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느님 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외치며 감격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힘들고 어려울 때, 외롭고 고독한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두렵고 무서움에 사로잡힐 때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뿐만 아니라 내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목과 선교는 코로나 19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주교직, 사제직을 수행해야 하는지.. 이미 교회 안에 갈라진 마음들, 홑어진 믿음을 어떻게 하나로 모을 수 있을지.. 다양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를 어떻게 바로 세워서 선교중심 의 신앙공동체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 이 모든 현실을 생각하면 광야에서 돌베개를 장을 자고 있는 야곱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밤마다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요한복음은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나자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가 있고 그 층계를 하느님 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살짝 뒤틀은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돌계단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땅에서 곤경에 처한 야곱의 사이를 이어주어 통로였습니다. 천사들은 그 돌계단을 통해서 하느님의 복을 야곱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바로 그 계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다리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 자라는 겁니다.

천사는 한마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그리고 자비를 전달해 주는 전달자 – 메신저입니다. 천사는 절망과 역경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하느님의 위로와 자 비를 경험하도록 돕고, 이 땅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의 눈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이끌어가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하느님의 천사로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천의 내동교회를 미카엘 성당으로, 성직자를 양성하던 신학원을 성 미카엘 신학원이라 명했고, 채플을 천군전이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천사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꿈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 이 하늘과 성공회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천사로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낸다면 사람들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이런 고백을 할 것입니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그런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천사로 다시 태어나고 천사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어려운 난제도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지 만 130년 전에 그 어려운 시절에 이 땅에 와서 선교를 시작했던 선교사 들의 열정과 꿈을 생각해 봅니다. 130년 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조건이나 상황은 그래도 좋은 편입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 주님의 교회를 돌보고 섬기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그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하여 교회다움을 드러내는 교회로 다시 거듭나길 꿈꾸며 이 예배를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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